Current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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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향한 도전
 
나는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터울이 큰 둘째딸로 태어났고 곧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서 인천으로 이사를 가서 신흥초등학교를 다녔다. 인천에서 보낸 나의 유년기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유복한 시기였으며, 그 사랑으로 지금 나는 예술가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손수 지은 2층 집은 동서남북으로 공원, 바다, 넓은 들판을 볼 수 있는 큰집으로 이것은 내게 주신 자연의 선물이었다. 당시에는 대중교통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만석공원을 넘어 때로는 철길 따라 걸어 다녔다. 행여 몸이 아프거나 그 밖의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의 엄격함으로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없이 6년 개근을 하였다. 어머니께서도 이 길을 걸어서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따뜻한 점심을 정각 12시에 내게 해 오셨다. 어머니의 열성으로 피아노와 무용도 열심히 지도 받았는데 이것 또한 예술가로서 중요한 감성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서울 수도 여자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6년간은 유년기와는 달리 어둡고 답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고 언니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서 가장역할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께서는 나도 의사가 될 것을 강경하게 권하셨다. 재수생인 나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나에게 맞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대학교와 대학원 6년은 현재까지도 나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는 결코 잊히지 않는 대학시절이다. 대학생활은 철저한 시간 관리였으며 시간의 가치는 하루하루 높아졌다. 밤과 낮이 구별되지 않는 작업에 대한 몰입의 시간만이 이어졌다. 대학원졸업논문인 『우리나라직물에 나타난 금박문양연구 1975』의 지도교수는 유강열 교수님, 내용고증은 석주선 박사님이셨다. 유강열 교수님은 공예가 판화가로서 선구적인 예술가이셨으며 특히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소장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유강열 기증실에서 볼 수 있다. 석 주선 박사님 또한 교육가로서 한국복식사 연구에 일생을 몸담아 명성을 남기셨으며 단국대학교에 석주선 기념박물관이 있다. 1976년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가슴속의 꿈과 함께 유강열 교수님의 연구조교와 대학교 강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에 결혼을 하였고 11월에는 유 강열 교수님께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전날 밤 신촌 로터리에서 우연히 잠깐 뵈웠을 때 “너는 작가가 되어라, 너는 작가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은사님은 내 인생의 멘토로서 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때로는 어둡고 험한 길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셨다고 믿고 있다. 건축가인 남편과의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다. 정신을 깊이 하는 생각의 뿌리도 깊어지고 창조적인 우정으로 행복의 뿌리도 깊어지는 세월을 함께해오고 있다. 나의 작품 활동에 관한 남편의 변함없는 배려는 언제나 내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학교 강의와 작품 활동을 충실하게 해오면서 나는 개성 있고 특성 있는 예술가로서 나의 빛깔을 지닐 것을 결심했다. 나의 작품 활동은 1973년(대학미전, 금상)부터 시작해서 초기 10년간은 베틀작업에 의한 태피스트리Tapestry와 텍스타일Textile이 주가 되어 1980년 신세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민족성에 기초가 된 한국성의 작품을 탐구 할 것을 결심하고 1984년 두 번째로 같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시 작품 중에 작품 “경사 慶事”는 같은 해에 ‘한국공예가회상’에 선정되었고 1990년에는 대만 타이페이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나의 첫 미술관 소장 작품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국내외의 중요 단체전, 개인전 전시회와 작품이 소장되면서 나는 아파트의 방이 아닌 규모 있는 작업실이 필요했다. 1989년 남편의 디자인으로 수리산 아래 안양 8동에 오랜 주택들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실을 갖춘 주택으로 이사하여 본격적인 작업에 전념하였고 이곳은 중요한 작품들이 탄생한 산실이 되었다. 예술가가 환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환경이 또한 예술가를 만들기도 한다. 동네환경이 특별한 작품을 탄생하게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진실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공간으로서 나의 작업실을 한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결같이 작업에 전념하면서 용기 있게 대학교 강의를 떠나고 예술가로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도전은 나의 세계를 넓혔고 나는 천천히 목표를 향한 높은 산을 오르게 되었다. 1992년 캐나다 CBC방송국 조슬린 리모즈씨의 기획으로 해외 개인전이 시작되어 오타와, 퀘백, 뉴욕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은 전통적 미학과 현대예술 사이에 내재된 연관성을 보여주며 한국 예술을 발견하고자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특색 있는 한국의 미와 대기의 정신을 선사해 주었다고 퀘백아트센터 공보관 샹탈 오띠에씨는 평가하였다. 1995년 일본에 갤러리 나노-리움 개인전에서 전시 기획자 나까우에 카즈야씨는 민족성을 추구하며 돌진한 결과에서 참된 국제성이 태어난 작품으로 한국의 근원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국제적인 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2000년 국내 성곡미술관 개인전에서 박문순 관장은 전통적인 소재와 개성 있는 주제로 마치 한판의 굿을 벌이듯 자유롭고 대담한 설치작품들을 선보여서 열정적인 예술혼을 가진 작가로 인정하였다. 2002-2003년 뉴질랜드 왕가레이아트미술관, 웰링턴 다우스아트미술관, 오클랜드 롭델하우스갤러리 순회개인전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 동기부여의 합이 성숙한 작품들이 뿜어져 나오는 원천이며 직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만드는 것과 문화적 역사를 재해석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매우 비상한 작가임을 전시 기획자인 왕가레이 아트미술관 관장 스코트 포탄씨는 평가하였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동아시아관장 펠리스 피셔 박사는 2005년 6월 미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신영옥의 작품은 창의성 순수성 교육성 역사성 예술성 등 모든 것이 복합돼 경이로운 조화를 창출하는 퓨전 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한국관이 완공되면 작품전시 계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대담하였다.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특별전에 작품 “음양의 공간” 이 초대 전시되고 이어서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전시되어 많은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며 뉴욕타임즈 등에서 호평 받았다.그 동안 나의 전시회와 작업실에서 구입해 간 작품소장 미술관중 대만 타이페이시립미술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 그리고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은 나에게 예술가로서 큰 긍지를 갖게 한다. 프로 예술가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오면서 작은 우연들이 내게는 행운이었고 나는 그 행운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작품 활동을 해온 세월이 40여년이 되었지만 내게는 긴 세월이라고 느껴지질 않는다. 그렇게 세월은 빨리 지나갔다. 처음으로 지나간 나의 삶을 정리하면서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이 아닐까? 라고 자문해 보면서 그 꿈을 향한 길을 걸어가고 싶다.
 
작가 신 영 옥

The Artist’s Challenge
 
I was born as the second daughter in my family in Jecheon-si, Chungcheongbuk-do Province, and was several years younger than my elder sibling. Soon after, my father got a new job and we moved to Incheon, where I attended Shinheung Elementary School. My childhood in the city was a happy time filled with my mother’s love and care, and I think that I am able to walk on the artist’s path today thanks to her love. The two-story house my father built for us with his own hands was large, with a view of the park, the sea, and a wide field on each side. This was a gift from nature to me. At that time, there was no public transportation in the area, so I had to walk across Manseok Park and sometimes along railroad tracks to go to school, which took about an hour. My mother was quite firm about my going to school, and no matter what happened, even when I was a little bit ill, I went to school every day for six years, without a single day of absence. My mother also walked this same road at 12 o'clock every day for 6 years to bring me a hot lunch. With my mother's enthusiastic support, I studied very hard in piano and dance, which I think also provided an important emotional foundation for my career as an artist. But unlike my early childhood, the 6 years I spent at Sudo Girls' Middle and High School in Seoul was a series of gloomy and frustrating days. My father was suffering from illness, and my family’s fortunes were on the decline, so as soon as my sister graduated from medical school, she had to play the role of the breadwinner to support the family. My parents strongly encouraged me to become a doctor as well. Re-taking the college entrance exam, I tried to enter an art college that I was interested in, and to find a job later on that would suit me. My 6 years at university and graduate school is a period that I will never forget, and still remains a part of my life to this day. My college days were a period of meticulous time management, and the value of time increased day after day. It was a time of thorough immersion in work, day in, day out. Professor Yu Kang-yul advised me on my master’s degree thesis (A Study on Gold Leaf Patterns in Korean Fabrics, 1975) while Dr. Seok Ju-seon ascertained historical evidence for the thesis. Professor Yu was a pioneering artist as a craftsman and printmaker, and he had a special love for the cultural assets of Korea. The relics he had possessed are now on display in the Yu Kang-yul Gallery for donated works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Dr. Seok Ju-seon has also left behind a reputation as an educator and scholar who devoted her life to studying the history of Korean costumes, and her collections are housed in the SEOKJUSEON Memorial Museum at Dankook University. After graduating from my master's program in 1976, I started working as a research assistant for Professor Yu and university lecturer while preparing for the future. I got married in April of that same year; in November that year, Professor Yu passed away from a sudden heart attack. The night before his death I had encountered him by chance at the Sinchon Rotary, and he said to me, “I hope you become an artist, you will become an artist.” I believe, as my mentor, that he has guided me on the right path to make my dreams come true, and that he has protected me from sometimes dark and rough roads. Through living together with my husband, who is an architect, my view of life deepened, and our lives developed into a creative friendship, characterized by our support for each other. My happiness grew deeper as the years went on. His unwavering consideration for my work has always helped me dedicate myself to it fully. While busy with lectures and work for my art, I became determined to have my own color as an independent and unique artist. Over a 10-year period that started I held my second solo exhibition at the same place, which resonated with viewers in 1973, when I won the gold prize in the university art competition, my portfolio expanded to include tapestry and textile works done on the loom. In 1980, I had my first solo exhibition at Shinsegae Museum of Art (now Shinsegae Gallery). Since then, I have explored the indigenous spirit of Korean culture, and in 1984, and critics alike. One of the works I exhibited, titled “A Happy Event,” was selected for the Korea Craft Council Prize in the same year, and in 1990, was picked up by the Taipei Fine Arts Museum in Taiwan, which was my first inclusion in an art museum’s collection. From about this time on, I had major group and solo exhibitions at home and abroad, and as my works were housed in art museums and galleries, the room in my apartment was not enough for my work. I needed my own studio of some size. My husband designed a house in 8-Dong, Anyang under Mt. Surisan, with a studio in harmony with old houses around it, and we moved there in 1988. There, I could fully commit myself to my work, and it became the birthplace of my major works. The artist creates the environment, but sometimes the environment also creates the artist. And the surrounding environment sometimes creates a special work. Therefore, as a space to grope for the truth and beauty for my art, my studio is more precious to me than anything else. As I was absorbed in my work all the way through, I found the courage to quit my career as a university lecturer and took on the new challenge of realizing my dream as an artist. This challenge widened my artistic horizons, and I slowly climbed the high mountain toward my goal. In 1992, under the direction of Jocelyne Limoges of the 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 (CBC), my first overseas solo exhibitions were held, in Ottawa, Quebec City and New York. Chantal Authier, Public Affairs Officer of the Quebec Arts Center, commented that the exhibition showed an inherent link between traditional aesthetics and contemporary art, and gave the numerous visitors the chance to see the distinctive beauty and ethos of Korean art. In 1995 I held a solo exhibition at the gallery Nano-rium in Japan. Nakaue Kazuya, who organized the exhibition, wrote a curatorial statement to the effect that “the artist’s pursuit of ethnic traits result in true internationality … Her work expresses the roots of Korean culture, which has also made her work international art.” In a solo exhibition held in 2000 at the Sungkok Art Museum, Park Munsoon, the director, commented, “She is an artist with a passionate free spirit, presenting bold installation works with traditional materials and unique themes, as if performing a gut,” the traditional Korean shamanic ritual. In 2002-3, I had traveling solo exhibitions at Whangarei Art Museum, the Dowse Art Museum, and Lopdell House Gallery in New Zealand. Mr. Scott Pothan, the director of the Whangarei Art Museum and the exhibition organizer, commented that the combination of Korean tradition and modern motivations was “… the source of the artist’s mature works … she is a very extraordinary artist who constantly explores new possibilities while producing textile works and reinterpreting cultural history.” Dr. Felice Fischer, Director in charge of East Asia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USA, said in an interview with Dong-A Ilbo in the US in June 2005: “Young-ok Shin's work is a fusion art that creates a marvelous harmony by combining creativity, purity, education, history, and artistry. We will not forget to exhibit her work when the museum’s Korea Pavilion is completed.” In 2008, my work “Space of Yin and Yang” was invited to be exhibited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 New York in 2008. This was followed by its exhibition at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enabling it to be introduced to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and receive favorable reviews from media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I am very proud as an artist that so many art museums and galleries have purchased my works from my exhibitions and studios, including the Taipei Fine Arts Museum in Taiwan,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in England, and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in the United States. Walking the path of a professional artist without a break, many small coincidences turned out to bring good fortune for me, and I think I've been preparing to embrace good luck. I have walked the path of an artist for more than 40 years, but I don't feel like it's a long time. The years have passed so quickly. Now, as I look back on my life, I think to myself, “Perhaps have I not yet seen the best day of my life?” I want to continue to walk the path towards that dream.
 
Young-ok Shin,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