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무지개에 대하여
씨킴은 꿈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그에게 꿈은 무척 다양하다. 이는 그가 꾸는 꿈이 성취하고자 하는 하나의 목표라기보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이자 매 순간 갱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씨킴을 ‘꿈’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의 의미를 삶에 가깝게 재구성하고 ‘꿈’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꿈을 꾸는 씨킴은 세계의 복잡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때그때의 국지적 진실들을 샘물처럼 퍼 올린다. 또, 그는 무지개를 이야기하는 작가다.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1802)에서처럼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나 어른이 된 다음에도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 가슴 설렌다. 무지개는 손에 잡히지 않고 드물게 나타나며 때론 잊혀지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존의 강렬한 감각과 불현듯 그 감각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 섬광 같은 충동은 그가 작업을 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
말하자면 씨킴에게 꿈과 무지개는 너무나도 생생한 살아있음의 감각을 드러내 보이는 대상이자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유연한 이상(理想)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충심의 사물, 그 예술의 꿈》은 꿈과 무지개에 접근하는 씨킴의 관점을 따라서 다양한 삶의 지향과 정동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또, 단일한 근원, 개념, 논리, 최종 목적과 같은 것을 상정하지 않고 그가 선보였던 여러 시도들을 고스란히 직조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 시기에 제작된 특정 작업군을 모아서 일반화하는 통시적 접근 방식은 지양하였으며 그때의 씨킴과 지금의 씨킴이 꾸는 꿈들이 포괄적이고 공시적으로 출현한다.
‘꿈’을 경계 짓지 않는 일은 역사적 맥락에서의 ‘예술’ 개념의 확장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예술 작품을 이데아의 모사이자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라 간주했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가 구체적 사물들 속에 있는 보편적 형상을 다룬다고 보았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고 예술가는 사물들을 연구하여 예술의 형식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모방으로서 예술을 보는 관점은 이후에 지오토나 치마부에의 시기에서부터, 고대를 모방하고 자연을 모사했던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빅토리아 시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의 작업이 등장하고 1960년대의 플럭서스,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의 운동에 이르러서 모방으로서의 예술관은 한계점을 노출하게 되었다. 요컨대, 이제 더 이상 예술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정의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맥락적 요인들을 고려하여 해석의 차원에서 정의 내려지고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 활동을 통해 꿈과 무지개의 이상에 다다르고자 하는 씨킴은 기존 미술사에서 출현했던 여러 예술 언어들을 작업의 재료로 자유롭게 활용한다. 즉, 그는 의도적으로 차용을 자신의 방법으로 선택하는데, 이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서 미술사 자체에 대한 메타적 접근이자 주관적인 해석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상이한 양식과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다. 가령, 그는 블루베리나 커피 등으로 추상 회화를 제작할 뿐만 아니라 독일어 교본과 잡지 이미지를 모사하는 등 구상 회화 작업도 한다. 작업 활동의 초기에는 ‘내추럴 팝아트’ 연작을 선보이면서 팝아트의 형식적, 개념적 요소들을 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팝아트 작가들이 소비사회의 코드로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사물들을 전시하여 그것들의 존재론적 지위를 변경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씨킴은 산업적인 생산물을 자신의 주관적 메시지를 ‘작위’하지 않고 표현하는 매개로 접근한다. 이는 가치중립적인 기계적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사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재의미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팝아트의 양식적 전형을 벗어난다. 공산품에 대한 그의 관심은 최근에도 발견할 수 있는데, 플라스틱 물병에 팔과 다리를 그려 넣어 의인화하여 제작한 부조 작업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플라스틱 물병을 구길 때 나는 소리와 손에 닿는 감각을 통해 그 사물에 내재한 생명성을 깨닫는다.
이처럼 그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형식과 개념들을 뒤섞고 이미 규정된 의미 체계 자체에 개입하려 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틀이나 개념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경계하고, 주어진 의미들을 계속해서 빗겨나가려 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시도들은 미술계 내의 인정투쟁의 맥락 또한 반영한다. 일례로 2004년에 출판된 『Re-making the Armory Show: The International Fair of New Art』를 보면, 그는 당시 영향력 있는 컬렉터로서 아모리 쇼의 VIP 초대장을 받고, 그 행사의 홍보물 등을 활용하여 아모리 쇼를 자신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제작하였다. 이처럼 미술계 내에서 영향력 있는 기관이나 전시 등에 자신의 해석을 틈입하는 방식은 최근 작업에서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그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발행한 전시 인쇄물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예술계 인사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작품 속에 포함시키는 등의 시도를 해왔다. 이러한 작업들은 미술계를 작동시키는 미술 시장, 전시 기관과 제도, 컬렉터, 비평가, 동료 예술인 등의 그물 같은 영향관계들을 직간접적으로 노출한다. 그는 그러한 관계항들 사이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을 표출함으로써 기존에 확립된 위계 구조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씨킴은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 중에 마주하는 것들의 의미를 전환하고자 해왔다. 가령, 고통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살피기 위해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꿈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죽음의 의미를 생명에 가깝게 변환하기 위해 해골 위에 급소 점을 찍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언어적인 의미 너머에 있는 다층적인 의미들을 환기시킨다. 씨킴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강조하는 까닭은 어쩌면 그가 언어와 같은 기표적 기호계가 한계 지우는 세계의 감각들을 해방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 때, 아직 말을 배우지 않은 아이가 감지한 세계의 놀라움과 풍부함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가 놀이를 하듯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근원적인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지개를 기다리듯 아직 오지 않은 의미의 자리를 비워두고서 삶의 면면을 현시하는 모든 것들에 경의를 표한다.
On Dreams and Rainbow
Ci Kim is an artist of dreams. His dreams are many and varied. This is because his dreams are not a singular goal to be achieved, but many things he encounters in his daily life that are renewed each and every moment. Therefore, in order for us to explain Ci Kim with the keyword ‘dream’, we need to reconstruct the meaning of the word closer to life and expand the scope of ‘dream.’
As a dreamer, Ci Kim is willing to embrace the world’s complexity and discover the minute truths of the moment. He is also an artist of rainbows. Just as in William Wordsworth(1770-1850)’s poem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1802), people still feel fluttered to see a rainbow in the sky, whether as a child or as an adult. Rainbows are rare, elusive, and sometimes forgotten, but no one denies or doubts their existence. This intense sense of presence, and the flashing urge to convey it to others, is the primary motivation for Ci Kim’s work.
For Kim, dreams and rainbows are both objects that reveal a very real sense of being alive and flexible ideals that guide his actions. Truthful Objects, The Dream of Art is organized in a way that reveals various life orientations through the medium of emotion, following the artist’s approach toward dreams and rainbows. In addition, the exhibition is organized with the intention to weave together his various attempts without assuming a single source, concept, logic, or end goal. For this reason, the exhibition eschews a diachronic approach that gathers a specific group of works from a specific time period and attempts to generalize. Ci Kim’s dreams of different moments and the present emerge in a comprehensive and synchronic way.
The non-demarcation of ‘dreams’ can also be linked to the expansion of the concept of ‘art’ in a historical context. Plato regarded works of art as imitations of the Idea and as distortions of truth. Aristotle, on the other hand, saw the artist as dealing with universal figures in concrete objects. According to him, art is an imitation of nature, and artists are those who study objects and turn them into forms of art. Such a view of art as imitation would later be carried over from Giotto and Cimabue, through the Renaissance, when imitations of antiquity and nature were made, and into the Victorian era. However, with the advent of Marcel Duchamp's work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movements such as Fluxus, Pop Art, Conceptual Art, and Minimalism in the 1960s, the idea of art as imitation began to reveal its limitations. In short, we no longer define art on an epistemological level but rather on an interpretive level, taking into account the many contextual factors that make a work of art what it is.
Seeking to reach the ideal of dreams and rainbows through his work, Ci Kim liberally utilizes various artistic languages that have emerged in existing art history as materials for his work. In other words, the artist deliberately chooses borrowing and reappropriation as his own method, going beyond mere imitation to a meta-approach toward art history itself and a process of subjective interpretation. That is why his work is a mix of different styles and concepts. For example, he not only created abstract paintings with blueberries and coffee beans but also worked on figurative paintings, copying images from German ABC books and magazine inserts. In the early years of his career, he borrowed formal and conceptual elements from Pop art in a series of ‘Natural Pop Art’ paintings. However, unlike Pop artists who sought to alter the ontological status of mass-produced objects by displaying them as codes of consumer society, Ci Kim approaches industrial production as a medium for expressing his own subjective feelings. This is not about approaching things in terms of value-neutral mechanical repetition. Rather, it is about actively talking to and trying to re-signify the things that surround him. His interest in manufactured goods is still present in his recent works, such as his anthropomorphic reliefs on plastic water bottles with drawings of arms and legs. He would crumple a plastic water bottle and realize the inherent life in the object through the sound it made and the feel of it in his hands.
In this way, Kim mixes seemingly incompatible forms and concepts and tries to intervene in the already established semantic system itself. He seems wary of attempts to reduce his identity to a single mold or concept, constantly trying to deflect the meanings given to him. Furthermore, these attempts also reflect the context of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within the art world. For example, in his 2004 book, Re-making the Armory Show: The International Fair of New Art, he recreated the Armory Show as part of his project, using the event’s promotional materials and VIP invitations as him being an influential collector. The incorporation of his interpretations into influential institutions and exhibitions within the art world is also reflected in his work today. For example, he has drawn on printed matters published by the Tate Modern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and has included correspondence with art world figures in his work. These works indirectly expose the web of influences that make the art world work: the art market, exhibition organizations and institutions, collectors, critics, and fellow artists. By expressing his feelings and symbols in between these relational terms, Kim creates a small crack in the established hierarchy.
Ci Kim has been trying to change the meaning of not only art, but also the things we encounter in the course of life. For example, he reminded us of dreams that follow the meaning of suffering like a shadow in order to examine it in a multifaceted way. He also drew pressure points on a skull to transform the meaning of death closer to life. These are works that evoke the multiple meanings beyond the signifiant semiosphere such as the system of language. Perhaps he emphasizes a childlike mind because he wants to liberate the senses of the world, which are limited by the realm of signifiers like language. In this sense, the desire to share the wonder and richness of the world, as perceived by a child who has not yet learned to speak, may have been the underlying motivation for Kim’s playful works. As such, he pays homage to all that is manifest in life by leaving room for meaning yet to come, as if he is waiting for a rainbow.